어린 너를 마취하며

아가라고
불러주랴​

너는
차가운 침대 위에
말없이 꿈만 꾸고 있는지​

별 같은
너의 가슴
숨대롱 꽂고
나 마냥
흔들리고 있음은

​내 가진 지식 명철은
새 발의 피​

거침없이 노래하는
푸른
네 박동
- 김기준 시인의 '나를 깨워줘' 中에서 -

생명을 노래하는 의사시인 김기준 교수(세브란스병원 마취통증의학과)가 병상 속 삶의 경계에서 겪은 일들을 엮은 자전 에세이 '나를 깨워줘'를 출간했다.

이 책에는 마취통증의학과 교수이기에 겪어야 했던 고통과 슬픔, 그리고 생명을 다루는 의사이기에 느낄 수 있었던 기쁨과 감사를 담은 40여 편의 산문과 40여 편의 시, 그리고 의료 현장은 물론 병원에서의 일상과 자신의 삶이 담긴 사진을 담았다.

'나를 깨워줘'는 김 교수가 출간한 두 권의 시집 '착하고 아름다운'과 '사람과 사물에 대한 예의'에 나오는 시를 탄생하게 모티브와 사건, 생각 등이 잘 정리돼 있다.

김 교수는 "사실에 기반해 가능한 객관적으로 기술하고자 노력했고, 이 모든 것들은 시인이며 의사인 나 개인의 관점에서 본 것들이고, 나의 속 마음을 가감 없이 드러낸 것들이라 내심 동의하기 어려운 내용도 있을 것"이라며, "'아, 이렇게 생각하는 의사도 있구나' 혹은 '아 이렇게 사유하는 시인도 있구나'라고 그렇게 조곤조곤 읽어주시면, 나는 참 행복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 책에는 상징과 은유, 그리고 그 어떤 아름다운 말이나 수사학적인 장식조차 필요 없다. 단어 하나, 토씨 하나, 문장 하나에도 산과 강, 들과 바다, 나와 너, 아버지와 아들, 어머니와 딸, 환자와 의사 등과 같이 삶의 풍경이 자연 그대로 담겨 있다.

한국의사시인회 김연종 회장(의정부 김연종내과의원)은 "'나를 깨워줘'는 생과 사가 교차하는 일촉즉발의 순간에도 아낌없이 자신을 불태우는 구도자의 기록으로 죽음을 응시하면서도 끝내 포기하지 않는 구원의 손길이자 말과 행동을 결코 가볍게 해서는 안 되리라는 신앙인의 다짐이자 때론 자신의 한계를 절감하며 통곡하는 한 인간의 고뇌로, 읽을수록 따뜻함이 배어 있고 정갈함이 더해지는 영혼의 숨결"이라며, "선한 영향력이 곳곳에 담겨 있는 책을 단숨에 읽으면서 내 인생에서도 기름기와 욕심 덩어리가 조금씩 빠져나가는 것을 느낀다"라고 추천사를 전했다.

​이어 김 회장은 "'나를 깨워줘'는 우리를 깨워줄 게 분명하다"라며, "당신의 영혼을 깨우고, 잠자던 신앙을 깨우고, 사라진 공감 능력을 일깨워, 우리의 앞으로 인생을 '깨어있게' 만들 테니까"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시 문예지 '예지'의 반경환 주간은 추천사를 통해 "시인은 인간의 영혼을 치료하는 의사이고, 의사는 인간의 육체를 치료하는 시인으로 이 영혼과 육체가 하나가 된 대서사시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김기준 교수의 산문집, '나를 깨워줘'라고 할 수 있다"라며, "이 책은 '시인-의사 정신의 진수', '천의무봉天衣無縫', 삶이 시 같고, 시가 삶 같으며, 진한 감동, 깊은 울림, 이 아름답고 슬픈 진정성의 세계는 그 어떤 원수나 악마마저도 다 그 죄를 고백하고 눈물을 흘리게 만들 것"이라고 소개했다.

​한편, 김 교수는 자신의 시 '너의 운명을 사랑하라'를 인용하며, 진정한 행복과 아름다운 삶에 대한 다짐을 밝혔다.

너의 운명을 사랑하라

​나는 시를 쓰고 부대끼며
그렇게 살기를 소망하는 시인

그러므로
나는

​병듦과 죽음, 다가올 운명을 두려워하거나 거부하지 않는다
돈과 권력, 명예의 허상을 좇거나 집착하지 않는다
하늘과 땅, 사람과의 인연을 경외하며 귀하게 여긴다
탐심과 성냄, 무지의 어리석음을 경계하고 멀리한다
- 영원을 사모하며 연구실에서, 김기준 -

- 책 속에서 -

태초의 마취 의사
하나님의
믿음직한 후배들이다
- 「후배들아」에서​

착한 아가. 잘 자거라.
착한 천사. 다시는 아프지 말거라
- 본문 중에서

​우리는 확실하게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고백하듯
나는 분명하게 죽음을 향해 길을 가고 있다
- 「의미심장」에서​

운구를 해 보면 안다
저 길이 곧 나의 길이라는 것을
- 「공부」에서

의학 자체가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특히 마취는 하늘의 영역에 속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담을 잠재우시고 갈비뼈를 취한 최초의 마취 의사가 하나님이시니까요. 어쩌면 마취 의사에게 가장 필요한 미덕은 겸손과 믿음인지도 모릅니다. 나는 아침마다 마취하기 전, 스스로에게 주문을 겁니다. 마음의 눈을 뜨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 본문 중에서

회복실에서 환자의 이마 위에 손을 올려보았습니다. 혹시나 하구요. 환자가 갸름하게 눈을 떴습니다. “여기 어딘가요? 나 살아있는 건가요?” “그럼요. 위에 계신 분이 아직 올 때가 아니니, 더 있다가 오시래요.”

‘살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살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코끝이 아리고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나로 하여금 시인의 길을 걷게 만든 산모로부터 비누 두 장을 받고 흘린 이후, 참으로 오랜만에 흘려보는 눈물이었습니다.
- 본문 중에서

구급차에 아버지를 모시고 앰부배깅을 하며, 김해까지 가는 길은 멀고도 멀었습니다. 강도 울고, 새도 울고, 바람도 울었습니다. 참 서럽고 서러웠습니다. 의사인 내가, 대학병원 교수인 내가.

- 본문 중에서

나도 대학생 때, 심한 우울증에 빠져, 음독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희망이 없어 보여도, 강물은 흐르고 또 흐른답니다. 우리 살아서 끝장을 봐요. 함께 해 봐요.
- 본문 중에서

우리들 모두는 지상에 잠시 머무는 시한부 인생입니다. 사랑할 날들이 얼마나 남아 있을까요? 미워할 시간이 어디 있어요? 오늘 저녁 장미꽃 한 다발 준비하여, 아내의 품에 안기려 합니다. 그리고 말하려구요.
- 본문 중에서​

- 저자 소개 -

김 기 준
김기준 연세대 마취통증의학과 교수는 1963년 경남 김해에서 출생했고, 1990년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했다. 현재 연세대 마취통증의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며, 한국의사시인회 및 서울시시인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6년 월간 시see 제7회 추천시인상, 2018년 ‘월간시 올해의 시인상’을 수상했고, 시집으로는 『착하고 아름다운』과 『사람과 사물에 대한 예의』, 그리고 사진 에세이 집 『그 바닷속 고래상어는 어디로 갔을까』가 있다. 이메일 kimocean6063@naver.com

나를 깨워줘

펴낸 곳 / 도서출판 지혜
발행 / 2023년 6월 15일
317page / 23,000원
ISBN / 979-11-5728-506-8 03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