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효근 시인의 '호박 오가리'

홍지헌 원장이 들려주는 '시 이야기'

엠디포스트 승인 2018.06.18 18:29 의견 0

호박 오가리

복효근

여든일곱 그러니까 작년에

어머니가 삐져 말려주신 호박고지

비닐봉지에 넣어 매달아놨더니

벌레가 반 넘게 먹었다

벌레 똥 수북하고

나방이 벌써 분분하다

벌레가 남긴 그것을

물에 불려 조물조물 낱낱이 씻어

들깻물 받아 다진 마늘 넣고

짜글짜글 졸였다

꼬소름하고 들큰하고 보드라운 이것을

맛있게 먹고

어머니께도 갖다 드리자

그러면

벌레랑 나눠 먹은 것도 칭찬하시며

안 버리고 먹었다고 대견해하시며

내년에도 또 호박고지 만들어주시려

안 돌아가실지도 모른다



여든 일곱 어머니 행복하시겠구나. 어머니가 주신 것은 무엇이든 귀하게 여기고 맛있게 먹어주는 아들을 두셨으니. 고향에 계신 어머니께 전화 한통 드려야겠다(홍지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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