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희덕 시인의 '어느 봄날'

홍지헌 원장이 들려주는 '시 이야기'

엠디포스트 승인 2018.04.05 08:02 의견 0

어느 봄날

나희덕

청소부 김씨
길을 쓸다가
간밤 떨어져내린 꽃잎 쓸다가
우두커니 서 있다
빗자루 세워두고, 빗자루처럼,
제 몸에 화르르 꽃물드는 줄도 모르고
불타는 영산홍에 취해서 취해서

그가 쓸어낼 수 있는 건
바람보다도 적다


떨어진 꽃잎을 그대로 두었더라면 아무 일 없을 것을 괜히 건드려서 자신의 마음도 건드리고 말았네.
그러니 우두커니 서 있을 수밖에. 꽃잎과 망연한 마음 바람에 맡겨두고. 마른 나뭇가지로 만들어진 빗자루처럼.(홍지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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