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아름다움에 반하고 맛에 취하다

엠디포스트 승인 2022.09.27 13:35 의견 0


“백송이 꽃으로 피어 천년의 맛을 빚다”

『교방』이란 조선시대 지방 관아에서 기생을 양성하는 기관이었다.
진주교방은 타 지역에 비해 규모가 커 <백화원>이라는 별도의 명칭이 붙었다. 남쪽 최고라 했던 진주 기생들이 교방에서 연회 준비와 함께 차린 진주 관아의 음식을 <교방음식>이라 했고, 빛깔과 맛이 아름답다 하여 『꽃상 花盤』이라 불렀다. 꽃밭처럼 화려했던 교방음식은 지리산과 남해 일대를 속현으로 거느렸던 진주 수령들의 통치 수단이 되기도 했다. “

경상우병영, 경상감영이 위치했던 촉석루의 연회상

“아무개 너는 음식 장만을 담당하여라. 술이 향기롭지 않거나 회가 맛이 없으면 너에게 벌을 내릴 것이다.”

“아무개 너는 음악 연주를 담당하여라. 노래 소리와 곡조가 화평하고 부드럽지 않거나 슬프고 음이 낮거나 연주가 급박하면 너에게 벌을 내릴 것이다.”

“아무개 너는 곱게 단장한 기생들을 담당하여라. 무릇 〈포구락拋毬樂〉과 〈처용무處容舞〉 등이 음률대로 되지 않으면 너에게 벌을 내릴 것이다.” -<정약용 여유당전서 중 촉석루 잔치>

이 책은 단순히 음식발기에 기록된 찬품과 레시피를 공개하는 것 이상의 문화와 역사를 담았다.

진주 기생들의 생활상을 배경으로 수령의 밥상, 논개의 제향에 올렸던 사슴고기, 임진왜란 당시 명나 라 군목의 두부정식, 고려시대부터 내려오는 정통 호족인 진주 강, 하, 정씨 가문의 내림음식,

대한민국 기업가 정신의 수도로 선정된 진주 승산 부자마을 재벌가의 손맛, 진주 육회비빔밥과 진주 냉면의 유래 등 다채로운 음식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이 걸이 저 걸이 갓걸이 진주 망건 또 망건”

어릴 적 동요로 기억 속에 남아있는 “이 걸이 저 걸이 갓 걸이 진주 망건 또 망건”은 양반의 옷걸이에 불과한 백성들의 아픔과 가짜 양반을 상징하는 망건이 많고도 많다는 뜻이다. 조선 후기는 돈으로 관직을 산 신흥부유층에 의해 음식 사치가 최고조에 이르렀다. 관아의 접대상은 이러한 역사를 배경으로 날로 화려해져 갔다.

임진왜란 진주성 전투에서 시작하여 이인좌의 난, 진주민란, 백정들의 형평사 운동 등을 음식과 연계

한 스토리텔링은 우리 전통 한식을 재조명한 새로운 시도이다.

승정원일기,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지방 관아의 음식 사치도 놓치지 않는다.

지방 수령들의 음식 사치는 일찍부터 조정의 눈엣가시였다. 인조 3년(1625년)에 조정은 대궐보다 후해진 지방 관아의 밥상이 도를 넘지 못 하도록 일정한 양식까지 만들어 삼남도에 배포하였으나 수령들은 대궐의 지시에도 아랑곳 않고 진수성찬으로 능력을 과시했다.

미국 대리 공사가 기록한 구한 말 지방 수령의 밥상, 국내 최초로 사진과 함께 공개

1894년 삼남도 일대를 여행했던 미대리공사 조지 포크(George C. Foulk)가 체험한 조선후기 지방관아의 접대상차림도 국내 최초로 공개된다.

포크는 140년 전 아무것도 덧칠되지 않은 조선, 우리 선조들이 살아낸 그 시간 속의 음식문화를 기록했다. 그가 써내려간 340페이지의 긴 문서들 중,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조선의 관아 접대상이 구한말의 사간을 거슬러 재현된다.

오랜 역사 속 소리 없이 잠겨있던 교방음식을 문헌으로 고찰하고 복원해 집대성한 이 한 권의 책은 전통뿐 아니라 한식세계화의 새로운 물길을 여는 계기가 될 것이다.

본문 발췌

『진주 관아에서는 다담상(*주안상으로 차려진 교자상)을 3냥으로 책정해 세금을 부과하였다. 매달 각 명목으로 11개의 큰 다담상을 들였다. 적어도 사흘에 한 번 이상은 만찬이 벌어진 셈이다.

1상에 7돈이었던 다식이나 유밀과, 정과, 술 등을 모두 합하면 관아의 잔칫상은 5냥이 훌쩍 넘는 돈이었다.

한양 백성의 백 일치 밥값을 상회하는 큰 금액이었다. 물건 대신 돈으로 내야 하는 백성의 세금이었다.』(19면)

『진주성 경상우병영은 14개 속현의 군사체계를 관할하는 기관으로 군력이 막강했다. 설날이면 속현의 수령들은 나이를 불문하고 젊은 병사에게 세배를 드리고 문안했다. 1890년 1월, 진주성을 방문한 함안 군수 오횡묵에게 박규희(1840~?) 병마절도사는 큰 상으로 접대했다. 영남에 온 뒤로 처음 맛보는 음식맛에 빈객은 기쁨을 감추지 못 한다.

이번 행차 좋은 끼니 신선의 주방에서 내어준 것 같네. 今行好頓仙廚供
입 안 가득 향내는 꽃을 씹는 것보다 더 나아라. 香頰津津勝嚼花“ 』 (45면)

『매화꽃 엔딩과 함께 찾아오는 도다리鮡達魚는 소고기 한 근 값이었다. 쑥을 넣어 말갛게 끓여낸 도다리 쑥국의 감칠맛이 첫 선을 보인다. 꽃잎처럼 살짝만 구워낸 햇감태도 그러하려니와, 식감이 아삭한 참죽의 새순 등은 따뜻하고 볕이 좋은 남도가 아니면 구경하기 힘든 재료였다. 중앙에서 부임한 수령은 한양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자연을 두루 맛본다.』(90면)

『진주비빔밥에는 진주 정신이 담겼다. 깊은 땅에 뿌리를 내리는 도라지와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고사리, 그리고 숙주나물은 청렴을 상징한다. 시금치는 거름을 주어 기르는 식물이라 불결하다는 인식이 있어 절대 쓰지 않는다.』 (107면)

『다산 정약용은 지방 수령의 음식이 궁중 수라보다 더 호사스러워진 원인에 대해 ‘현실성 없이 박하고 경솔하게 제정된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조선시대 왕실이 정한 예식 절차)’를 꼬집었다. 조정에서 지방 수령들에게 너무 박하게 찬품수를 제한하다보니, 이를 어기게 되어 점점 규례가 무너졌다는 것이다.』(215면)

필자소개

박미영

1963년 진주에서 태어나 자란 진주 토박이다. 경상국립대에서 식품영양학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진주의 음식을 사랑했고 진주의 맛을 찾아 수십년간 연구 끝에 교방음식을 재현하고 복원하였다. 현재 재단법인 한국음식문화재단 이사장으로 재직 중이며 매년 광화문광장에서 <한국식문화 세계화 대축제>를 주관하는 등 전통음식 홍보대사로서 다각적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천년의 古都 진주에는 독특한 고유의 음식이 있습니다. 북평양 남진주의 명성을 날린 진주기생들이 만든 교방음식입니다. 기생은 천민 계급이었고 관아 반빗간의 일도 겸했습니다. 기생을 주탕비라고도 불렀는데 이는 술국을 만드는 노비라는 뜻입니다. 높은 관리들을 위한 접대는 물론, 양반댁 잔치와 궁중 연회에도 불려갔던 진주기생들, 그들의 섬세한 감각으로 만든 교방음식은 제철 식재료가 오른 건강식이면서 모양이 화려합니다. 진주의 역사를 따라 거닐면서 진주의 맛을 느껴보십시오. 우리 선조들이 걸어온 희노애락과 미찬의 꽃상을 이 한 권의 책에 담았습니다.』

-필자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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