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협, ‘종합병원 필수과목에 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 제외해 달라(?)’, 해당 의사회 즉각 반발

- 병협, 필수의료 현장 인력 원활한 배치 위해 산부인과·소청과 삭제 요구
- 산과·소청과의사회, 국민건강 무시하고 수익만 추구하는 경영자 단체의 궤변
- 병협을 보건의료 정책 결정 과정에서 배제하고 건정심 위원에서 즉각 해촉해야

김은식 기자 승인 2022.10.06 08:54 의견 0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임현택 회장(좌)과 대한산부인과의사회 김재연 회장(우)

대한병원협회(이하 병협)가 최근 보건복지부에 제출한 필수의료 종합대책 수립 관련 제안서에 종합병원 필수 개설 진료과목에서 산부인과와 소아청소년과를 삭제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 사실로 드러났다.

이에 산부인과와 소아청소년과(이하 소청과) 양 의사회는 “병협이 국민 건강을 우선시하는 의료인 단체가 아닌 단지 경영자 단체에 불과함을 다시 한번 극명히 보여준 사례”라며, “국민 건강이 최우선이 아니라 수익이 되지 않으면 어떤 과도 버릴 수 있다는 모습을 국민 건강을 담당한 자들이 병원에 적용하고 있는 것"이라며 강력히 반발했다.

최근 병협은 수가를 포함한 인력, 시스템 등 다양한 부분에서 병원들의 요구를 담은 ‘필수의료 종합대책 수립 관련 제안서'를 보건복지부에 제출했고, 문제가 된 해당 요구사항은 종합병원 필수 개설 진료과목 조정에 담겼다.

현재 의료법 제3조 3 (종합병원)2.는 ‘100병상 이상 300병상 이하인 경우에는 내과·외과·소청과·산부인과 중 3개 진료과목, 그리고 영상의학과, 마취통증의학과, 진단검사의학과 또는 병리과를 포함한 7개 이상의 진료과목을 갖추고 각 진료과목마다 전속하는 전문의를 둘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병협은 ‘실제 필수의료 현장에 의료인력이 원활하게 배치될 수 있는 구조로의 전환하기 위해 소청과와 산부인과를 삭제해 달라’라고 복건복지부에 요청했다.

이에 대한산부인과의사회와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양 의사회의 허락은커녕 의견도 묻지 않고 말도 안 되는 궤변으로 보건복지부에 제안서를 들이밀었다”라며 강력한 규탄의 입장을 밝혔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임현택 회장은 입장문을 통해 “병협이 필수의료를 강조하며 살리자고 외치는 것 역시 말 그대로 국민 건강의 관점이 아니라 전적으로 돈을 더 벌고 싶다는 욕심에서 나오는 주장일 뿐 결코 필수의료라 표현되는 기피 전문과들과의 고충과 미래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모습”이라며, “우리는 오히려 지금이라도 자신들의 실체를 국민들 앞에 만천하에 공개한 병협의 주장을 환영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임 회장은 "이런 집단이 의료 정책 결정 과정에서 의협 등 의료인 단체와 같은 자격으로 참여하는 것은 전혀 합당하지 않으며, 필수의료 대책이나 건정심 등의 구성에서 이들은 마땅히 제외돼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대한산부인과의사회와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필수 기피 전문과인 소청과와 산부인과를 살리기 위해선 전문의와 이들을 고용하는 입장인 병협에서 앞장서서 일자리를 늘리고 해당과 전문의들의 근무 조건을 개선해 기피과가 아니라 전공하고 싶은 과가 되도록 활성화하려는 모습을 보일 수 있게 제도를 마련해 달라고 하는 것이 병협의 역할일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 김재연 회장은 “병협이 제대로 된 직역 단체라면 ‘소청과와 산부인과가 없는 병원은 진정한 병원이라 할 수 없으며, 지금 현재 의료 상황은 두 과를 유지하기 위해 희생하는 것이 너무 크기 때문에 다른 과들도 위험해지는 상황이다. 필수의료를 지키기 위해서 연쇄적으로 무너지는 것을 막는 것이 시급하기 때문에 당장 국가는 소청과와 산부인과를 지키기 위한 특단의 조치를 내놓아야 한다'라고 주장하고, ‘우리는 두 전문과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버티겠고 국가가 해결하지 못하면 다른 모든 과들이 같이 같이 무너지게 될 것이니 그 책임은 국가에 있음을 분명히 알라'라고 주장했어야 한다”라고 병협의 태도에 반박했다.

이 같은 병협의 태도에 대한산부인과의사회와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복지부는 산부인과, 소청과와 같은 필수 의료과가 개설돼 있지 않은 의료기관은 병원 수가가 아니라 의원 수가를 적용하고, 병협을 필수의료 살리기 논의 등 보건의료 정책 결정 과정에서 배제하고 건정심 위원에서 즉각 해촉하라"라고 강력히 요구했다.

입장문 발표 후 양 의사회는 현안에 대한 주장을 이어갔다.

임 회장은 “종합병원을 개설하기 위해서는 산부인과나 소청과 중 무조건 한 과는 반드시 진료과목을 두도록 해야 하는데, 최근 보건의료노조가 발표한 전국 41개 상급병원 실태조사에 따르면 산부인과가 없는 곳이 24곳, 소청과가 없는 곳이 23곳에 달한다”라며, “이것이 현재 우리나라 보건의료 현장의 실태인데, 이 기회에 전수조사를 통해 병원 인증을 취소하고 의원급으로 강등시키는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코로나 19 사태를 통해 산부인과와 소아과의 부재가 소아, 청소년, 태아, 산모의 안전과 건강에 얼마나 위협적인가에 대한 주장도 나왔다.

김 회장은 “가뜩이나 산부인과가 부족해 고통을 겪는 가운데 코로나 19 사태 중에는 산모를 받아주는 병원이 없어 구급차 안에서 헤매는 일들이 비일비재했고, 심지어는 아이들이 구급차 안에서 숨지는 참혹한 사태도 있었다”라며, “한국이 여러 가지 문제를 겪고 있지만, 우리는 그 수많은 문제 중 가장 심각한 것이 저출산이며, 그것은 국가 존립의 문제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김 회장은 “어떤 문제보다도 심각한 문제인데 가장 먼저 신경을 쓰고 그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야 하고, 심지어 중증 진료를 담당하고 있는 병협에서 이런 입장을 냈다는 것이 매우 실망스럽다”라며, “아이들과 산모들의 건강과 안전을 조금이라도 생각했다면 절대로 이런 상황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9월 22일 소방관계청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올 상반기 동안 병원에 도착하기 전 구급차 내 출산 건수는 97건이며, 그 가운데 17(22%)건은 코로나19 환자의 출산으로 나타났다.

임 회장은 “질병관리본부에 의하면 코로나 19로 인한 병원 외부18세 이하 소아·청소년 사망은 모두 19건으로 전체 사망의 41.3%였는데, 이중 자택이 2명이고 나머지 17명은 응급실 사망”이라며, “아이들이 응급실에서도 오갈 데 없어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해 숨졌다는 것은 참담하기 그지없는 일”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임 회장은 “현실이 이런데도 앞으로 산부인과와 소청과 등의 의료 인프라가 무너지면 아이와 산모가 숨지는 끔찍한 사고가 비일비재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대한산부인과의사회와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병협에 대해 공식적인 사과와 의견서 제출 철회를 요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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